[글로벌 현장을 가다]
뉴욕시 8일부터 1단계 경제 재개… 예술로 코로나와 약탈 아픔 지워
사회적 거리두기 위해 가게 단장… 도시화 부작용 개선이 부활 관건
소호 거리의 가게들은 코로나19로 문을 닫았다. 설상가상 지난달 31일 밤과 이달 1일 새벽에는 백인 경관의 폭력으로 숨진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씨의 사망에 항의하는 시위를 틈타 벌어진 범죄자들의 약탈로 이 거리의 상점 절반가량이 피해를 입었다.
황폐해진 소호 거리는 요즘 코로나19 사태로 문을 닫은 뉴욕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대신하는 ‘거리의 갤러리’로 바뀌고 있다. 뉴욕의 예술가들은 상점 쇼윈도에 설치된 약탈 방지용 나무판을 캔버스 삼아 사랑과 평화, 차별 반대 등을 상징하는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다.
○ ‘소호의 눈물’ 닦아주는 예술가들
거리예술 운동은 뉴욕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모임인 ‘소호 소셜 임팩트(SSI)’가 주도하고 있다. 경제활동이 재개되면 철거될 쇼윈도 나무판자에 공 들여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뭘까. 친구 케이지 드라이스데일 씨와 SSI 운동을 시작한 트리스턴 레지나토 씨(25)는 기자에게 “약탈이 끝나고 소호 가게의 쇼윈도에 붙은 흉한 모습의 나무판자들이 보기 싫었다”며 “아름다운 예술로 이 부정적인 일들을 모두 되돌려놓고 싶다”고 말했다.
SSI에는 레지나토 씨와 뜻을 같이하는 뉴욕의 예술가 등 4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SSI는 “암울하고 추한 합판에 그림을 그려 사랑을 널리 전파하고 싶었다”라고 목적을 밝혔다. 레지나토 씨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SSI가 세계적 운동이 됐으면 좋겠다”며 “한국 아프리카 남미 등의 예술가들과 협업하고 싶다”고 말했다.
뉴욕시는 코로나19 첫 환자가 발생한 지 꼭 100일이 되는 8일 제조업, 건설업 등 일부 업종의 활동을 재개하는 ‘1단계 경제 재개’에 들어갔다. 의류 상점들도 매장 밖에서 미리 주문한 물건을 건네주는 식의 영업을 할 수 있다. 약탈을 당하지 않은 소호 지역의 일부 매장도 문을 열었다. 하지만 예전의 활력을 되찾기까진 아직 갈 길이 멀다. 소호 상권 육성단체인 ‘소호얼라이언스’의 션 스위니 대표는 지역방송 ‘뉴욕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도시 경제가 완전히 재개되기까지 상점들의 나무판자들이 철거될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 ‘포스트 코로나 시대’ 준비하는 상인들
이날 오후 맨해튼 유니언스퀘어에서는 뉴욕시의 경제 재개 이후 첫 농산물직거래 장터가 열렸다. 인종차별 항의 시위가 열렸던 광장에는 뉴욕 일대 농민이 텐트 100여 개를 설치했다. 신선한 야채, 과일, 꽃을 사려는 뉴욕 시민들로 북적거렸다.15일 맨해튼 코리아타운 한식당 삼원가든. 직원 10여 명이 영업 재개를 위한 공사를 하고 있었다. 입구에는 300만 원을 들여 체온 감지 장비를 설치했고, 계산대에는 안면 인식과 체온 측정이 가능한 인식기를 설치했다. 인식기에 다가가자 ‘낯선 사람’이라는 표시가 뜨면서 ‘정상 체온’이라는 소리가 울렸다.
이 식당은 건물 벽, 화장실에 자외선 살균기, 유리창에 살균 필름, 테이블에 투명 차단막도 설치할 예정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위해 식당 테이블은 절반으로 줄이기로 했다. 토니 박 사장은 “위기 이전으로 돌아가려면 1년은 더 걸릴 것”이라며 “줄어든 식당 매출을 만회하기 위해 식재료를 드라이아이스 용기에 담아 미 전역에 배송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 코로나에 멍든 도시, 탈도시 현상 가속화
최근 방문한 코리아타운 건물 곳곳에는 ‘임대 안내’ 간판이 걸려 있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빈 상가나 방이 나오면 하루에 수십 번씩 계약 문의가 쏟아졌지만 지금은 월세를 30∼40% 내려도 문의가 없다고 부동산 업계 관계자들은 전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코로나19 위기가 정점으로 치닫던 3월 1일부터 5월 1일까지 뉴욕 시민의 약 5%인 42만 명이 도시를 떠났다. 부유층이나 대학생 등 젊은층이 많이 사는 지역인 어퍼이스트사이드, 웨스트빌리지, 소호, 브루클린하이츠 등에서는 인구가 40% 이상 한시적으로 줄었다. 이들이 언제 얼마나 돌아올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CNBC는 “시민들이 도시를 떠나는 ‘탈도시 현상’과 부동산 거래 중단으로 부동산 가격 하락 압력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대중교통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경제 재개 첫날인 8일 뉴욕 지하철 이용자는 전주 대비 17% 늘어났지만 감염을 우려해 대중교통을 꺼리는 분위기는 여전하다. 경제활동이 재개되고 시민들이 다시 자가용을 몰고 나오면 극심한 교통체증을 피할 수 없다. 통상 맨해튼의 대중교통 이용량이 1% 감소하면 자동차 통행이 12%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교통공사(MTA)는 객차 소독용 자외선 살균기 등을 도입하는 등 ‘포스트 코로나’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 시험대 오른 ‘콤팩트 도시’
코로나19 사태는 도시 경제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인구 840만 명의 뉴욕시에서 2만 명이 넘는 코로나19 사망자가 발생했다. 대도시의 핵심 경쟁력인 인구와 자본의 집적이 공중보건 위기의 도화선이 된 것이다. 공중보건 인프라가 부족하고 빈부 격차가 심각할 경우 좁은 지역 초고층 빌딩에 많은 이들이 모여 사는 ‘콤팩트 도시’ 모델이 전염병과 약탈 등에 취약하다는 한계를 드러냈다. 1970년대 뉴욕처럼 ‘경기 침체→시민 이탈→시 재정 위기→범죄 증가→도시 경쟁력 악화’로 이어지는 메가톤급 ‘대도시 위기’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당시 뉴욕시는 두 차례 경기 침체로 인구 130만 명이 순감소했다. 세수가 줄어 시 재정이 악화되자 경찰 채용조차 4년간 중단됐다. 범죄도 급증했다. 뉴욕시는 이번 코로나19 사태 이후 재정 적자가 90억 달러로 불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뉴욕시 감사원은 2024년이 돼야 줄어든 일자리가 코로나19 위기 이전으로 회복될 것으로 예상했다.
2001년 9·11테러,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2년 허리케인 샌디 등 숱한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것처럼 뉴욕시가 이번 위기도 빠르게 극복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재택근무가 일상화되고 도시 이탈 현상이 벌어지더라도 사람과 사람을 긴밀히 연결해 주는 도시의 ‘집적효과’를 기술이나 교외 지역이 대체할 수 없다는 논리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도시의 부활은 지도자들이 시민들이 안전하게 거주하며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고 전망했다.
박용 뉴욕 특파원 parky@donga.com
June 18, 2020 at 01: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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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짓던 거리가 ‘갤러리’로… ‘뉴 노멀’ 뉴욕의 부활 날갯짓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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