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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ey의 싱글라이프-⑯] 뉴욕, 한여름 밤의 꿈처럼... - 시사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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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캐스트, SISACAST= 칼럼니스트 Journey)

그날 뉴욕 맨하탄의 여름밤도 요즘 한국의 장마철까지는 아니어도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밤이었다.

나는 사이좋은 남자친구 준, 캉과 이탈리안 여자친구 엘레나와 함께 노란색 뉴욕 택시에서 내렸다. 택시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Empire State of Mind, 우리의 목적지는 소호의 한 레스토랑 부베떼 라는 곳이다. 결혼 후 뉴저지 호아켄으로 이주한 캉이 강력히 추천하는 디너 장소였다.

엘레나와 나는 예쁜 칵테일 드레스를 입었고, 금융권에서 일하는 허우대 좋은 남자 친구 녀석들은 그럴싸한 정장 차림이었다. 

우리 모두에게 낯선 미국 땅에서, 그 어두운 노란색 조명에 흔들거리는 테이블 촛불 사이 서로의 온기를 의지하며 풍미 좋은 와인에 맛있는 이탈리안 음식으로 배를 채우며 끊임없이 수다를 떨었다. 30대 중후반, 가장 아름다운 청년들의 삶이 무르익고 있었다. 

외국계 은행 임원인 친구 준이 녀석이 하필 뉴욕으로 출장을 온 덕에 우리의 밤은 매일이 풍요로웠는데 그 이유는 평생 출장에서 일만하던 녀석이 처음으로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며 행복해했더니, 캉이 매일 우리를 위한 디너 약속을 줄줄이 잡아놓았기 때문이다.

뉴욕 최고의 오이스터 바, 100년 역사의 피자집, 두툼한 베이컨 스테이크 집, 이탈리안 레스토랑, 맨하탄의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루프탑 바를 누비며 우리는 젊은 날에 가장 어울리는 화려한 밤들을 차곡차곡 추억으로 쌓았다.

아직도 설레는 그 분위기와 서로의 따뜻한 눈빛들, 끊이지 않는 웃음이 눈가에 선하다. 코 끝에 느껴지는 비 온 뒤 쾌쾌한 나무 냄새도, 촛불이 흔들리며 서로의 얼굴에도 넘실넘실 붉은 기운이 어른거린 한여름밤의 기억, 이제는 그저 꿈인 것 같다. 

아마도 꿈 꿔야 할 것 같다.

나는 당시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퇴사를 한 후 요양(?) 겸 여행을 목적으로 뉴욕에서의 한 달살이를 결심했고, 다행히도 세상 어디에도 나의 지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청춘의 힘으로 버텨가며 살아가고 있었다. 

캉은 이제 막 출산한 중국인 와이프와 쉽지 않은 상의 끝에, 뉴욕에 첫발을 내딛은 나를 3일간 그들의 뉴저지 아파트에서 재워주었고, 예상대로 녹록치 않았던 덕에 나는 맨하탄 중심가에 있는 작은 호텔로 이동해서 3일을 보냈다. 그리고 결국 서 박사과정 중 임신으로 인해 학업을 중지한 캉의 와이프가 사용하던 콜럼비아 대학교 소속 아파트를 렌트했다.

대학가에서 시작되는 나의 뉴욕 라이프는 매일 낯설었지만 또한 매순간 설레고 행복했다. 

눈 뜨면 출근해야할 곳이 없는 나는 창밖의 낯선 풍경을 즐기며 아침 차를 한잔 마셨다.

에어컨 없는 오래된 아파트, 나는 더 이상 날씨가 더워지기 전에 악취와 통신 불량, 그리고 낯선 위험으로 가득한 뉴욕의 지하철을 타고 뉴욕의 중심가로, 또 박물관으로, 미술관으로 이동했다. 때로는 센트럴파크 북쪽에서 공원을 가로질러 공원의 남쪽까지 걷곤 했는데, 한여름 뜨거운 열기와 싱그러운 햇살 속에서 쉬어가며 마시는 한 잔의 커피와 베이글 샌드위치는 나에게 매일의 기분 좋은 선물이었다.

캉은 COVID-19 로 인해 여전히 뉴저지의 집에서 셧다운 상태로 가족을 보살피고 있다. 준이 녀석은 한참 시위로 시끄러웠던 시기에 홍콩으로 회사를 옮겨가 여전히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나의 이탈리안 친구 엘레나는 변호사의 꿈을 버리고 패션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역시 COVID-19의 영향으로 처참한 상태가 되어버린 이탈리아의 시골집에서 조카녀석들과 함께 조용히 지내고 있다. 

나는 오늘 뉴욕, 프로방스, 홍콩에 있는 세 녀석들과 문자 메시지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우리가 다시 만날 그날을 기약한다. 

COVID-19는 사라지지 않지만 상황은 나아질 수 있고, 모든 것들이 적당한 순간이 되면 우리는 한 차례 인생의 고비를 이겨낸 단단한 중년의 모습으로 다시 뉴욕에서 만날 수 있다. 

쏟아지는 여름장맛비, 좀처럼 불식되지 않는 코로나 확진자의 뉴스 보도와 전 세계에 끊이지 않는 재앙 수준의 재난 소식들에 씁쓸하게 물기가 생긴 눈을 부비며, 꿈만 같았던 지난날의 추억을 곱씹어본다.

우리, 지금 여기, 지나쳐 보내야만할 힘들고 혼란스러운 청춘의 한 자락에서 서로를 응원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그들에게 보낸다.

노자가 말했다.

회오리 바람은 내내 불지 않고, 소나기도 계속 내리지 않는다고.

[사진=픽사베이/Journy]




August 12, 2020 at 07:56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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